2010/05/03 16:31
  돌아보면 참 긴 것 같은데 햇수를 세어보니 1년 2개월. 썩 길진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학교라는 작은 우물 안에서는 실력 좋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눈동자가 초롱거리던 신입사원이 매일같이 화장실에 틀어박혀 울기에는 너무 고된 시간이었다. 그래, '매일'은 좀 과장이다. 수정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왠만한 슬픈 영화는 울지도 않아 감정이 메마른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은 내가 서러움에 복받쳐 그렇게도 울어댔다.

  야근을 수 없이 했지만 사실 일 자체의 업무적인 강도가 높은 건 아니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서 들어온 회사이건만 9시부터 18시까지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의 다운로드 문의전화를 받고, 웹페이지의 자잘한 수정이나, 고객사 컴퓨터가 포맷할 때마다 원격으로 프로그램을 재설치하는 등 개발보다는 운영적인 업무가 주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6시 이후 전화코드를 뽑아버리고 야근을 하는 3시간 정도.

  그래도 신입일 때에는 '내가 신입으로 막내이고 아직 실력검증이 안되어 이런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것, 능력을 어필하고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으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옆 개발팀이긴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을 보면서 그 희망이 조금씩 주춤했다. 나는 일년 내내 갖고싶어 발버둥치는 기회를 저렇게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상반기 개발자들의 계획된 일정이 나왔다. 아- 나는 여전히 이전과 비슷한 업무다. 내가 원했던 모바일 SW 개발은 인력부족으로 프리랜서까지 고용했으면서, 왜 난 또 이 업무를 주는 것인지! 유지보수 업무때문에 내가 원하는 개발 업무를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겠다며 면담에서 어르고 달래준 말은 모두 거짓부렁이었나? 그렇게 주춤하던 희망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 희망이 없는데, 노력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노력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목표 없이 일하는 사람은 없다. 골인지점 없이 달리는 마라토너는 없다. 희망을 먼저 가지자. 그리하면 자연히 노력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 -사무엘 존슨

   희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이전에는 잘하면 되는거야라는 생각에 야근불사하며 스스로의 개발능력 향상에 신경쓰고 열심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내가 원하는 개발을 해 볼 수 없을거라는 절망이 생기자, 분명 업무는 이전과 같은데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견딜 수 없게 달랐다. 내가 자동화 프로그램만들고, 프로젝트 구조를 객체지향적으로 리팩토링하고, 변수명 하나하나를 고심해서 만들어봐야 무엇 하나. 1년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결과가 이런데... 회사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지고 눈물이 어느샌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더 이상 아무런 노력을 할 수 없겠더라.

   가장 좋은 커리어관리는 첫 직장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대리를 달은 후에 연봉을 확 올려서 이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 정석의 루트를 밟고 싶었어 1년 넘게 참고 또 참아왔던 것을 이젠 포기하기로 했다. 팀 이전을 다시 부탁해서 3년을 채우는게 좋겠지만 솔직히 그건 작년부터 요청해왔던 일이었고 이미 거절당했다. 이 팀에서 일 하고 싶지 않다면 미련 갖지말고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말까지 들은 마당에 구차하게 졸라대는 식으로 또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참 갖잖지만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러던 와중에 선배의 회사에서 직원추천으로 구인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타이밍 참 기가 막히다. '개발자 우대'가 눈에 띄는 회사라서 이전부터 부러워하곤 했는데 이 기회가 너무도 붙잡고 싶어졌다. 기술시험이 있어 새벽까지 자료구조 책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벼락치기를 했다. 그리고.... 붙었다. ^___________^ 이제는 마음이 가볍다. 이 일을 탈출(?)하고 내가 본래 원했던 일을 제대로 해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Posted by 보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