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9 14:29

   개발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 조합- 즉 노조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그래서 여느 직업군들처럼 단합된 노조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노동자는 왠지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직업" 같다는 생각을 해 나와는 관련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 '전문가'라는 자부심에 회의를 느낀다.

  발주자 '갑'이 있고 프로젝트 수주자 '을', 그리고 나는 '을' 개발자 아래에서 일하는 협력업체의 '병' 개발자다. '정'까지 안 내려간게 어딜까 싶지만, 그래도 '병'까지만 와도 드럽고 치사한 꼴 많이 본다.

  이 프로젝트의 제일 큰 문제는 문서상으로 시나리오가 존재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아니- 혹은 우리에게 전달 안해주는 걸까) 테스트 부서에서 문제로 언급되어 열심히 뚝딱뚝딱 고쳐놨더니 보름 지난 뒤에 메일을 보내서는 이런 소리를 하더라.

  "당신이 수정한 코드가 내 코드와 충돌이 난다, 지워라 "

    "이거 뭐뭐뭐 고치는 것 때문에 수정한 겁니다 "

  "그거 이미 사업자랑 협의  되었던 사항이다. 끊기는 걸 정상 동작으로(....응?) 시나리오 진행한다" 

  평소에도 우리한테는 '당신이 수정한 코드에서 Side Effect 나지 않게 조심해라', '시나리오 모호한 거는 마음대로 진행하지 말고 우리를 거쳐라' 등등 여러모로 쪼아댄다. 하지만 사람 하는 일이 어디 그리 완벽한가? 코드를 몇 번을 리뷰하고서 서버에 올렸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에러가 발생하기도 하고, 이번처럼 시나리오 문의 할 것도 없는 버그라고 생각해서 고쳤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그것은 비단 '을' 개발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보다 몇 년씩들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실수? 잘- 한다. 버그가 리포팅 되어서 찾다보니 그들이 추가한 코드에 의한 문제로 밝혀지면 미묘한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니들도 똑같잖니" 라면서 내심 고소한 기분과 그리고 그 기분을 그들에게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심정이 그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개발이면 좀 나을까. 테스트 부서에서 버그라고 올라오는 것을 찾아서 수정할 필요가 없는 혹은 수정할 수 없는 사항은 빼내고, 수정할 사항은 찾아서 고치는 이 업무는 내가 생각했던 개발자로써의 이상이랑 많이 다르다.

  일에 있어서 창조성이란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사실 많이 슬프다. 개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어렵게 결심한 이직이었던지라 더욱 그렇다.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하는 지시에 따라 그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타닥타닥 눌러대는 듯한 지금-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일을 즐겁게 바꾸어 할 수 있을까?
Posted by 보댕